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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예쁘게 보이려는 욕구는 동서양의 구분 없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손톱에 물을 들이는 풍습은 
서양의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봉선화라는 이름은 군방보(群芳譜)의 기록에서 유래한다. 군방보 기록에 따르면 봉선화는 "줄기와 가지 사이에 꽃이 피어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모두 우뚝하게 일어선 봉황새의 형상을 닮아서 봉선화란 이름이 생겼다"고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봉선화를 금봉화(金鳳花)·소도홍(小桃紅)·길길초(吉吉草)·불두주(佛頭珠)·국비(菊婢)·해납()·우객(羽客)등 대단히 많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또 봉선화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해서 염지갑화(染指甲花) 또는 단순히 지갑화(指甲花)라 칭하기도 한다. 혹은 규중 여인들의 벗이라고 해서 규중화(閨中花)라고도 한다. 
또 협죽도(夾竹桃)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목본인 협죽도와 이름이 같으므로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봉선화의 씨는 급성자(急性子)·한진주(旱珍珠)·은선자(隱仙子) 등으로 부르며, 투골초(透骨草)라는 이름도 있다.


이미 네일 산업은 헤어미용, 피부미용, 네일미용으로 구분되어 뷰티산업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정부 출범을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원에에서 ‘손톱 밑 가시’ 1호로 네일미용업 분리 
발표 이후, 2013년 7월 4일 네일미용업신설을 위한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었고, 2013년 9월 17일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2014년 7월 1일부터 미용업(손톱,발톱)이 신설되어 네일미용 영업은 영업신고증을 교부받아 합법적인 영업을 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꾸준한 성장가도를 달려 한국네일협회에는 자격시험 응시 인증학원으로 등록한 학원이 380여개에 달하며, 이후에도 연간 50여개의 
아카데미가 신규 인증학원 등록을 신청했다. 이는 교육부문의 성장에 따른 수준 높은 네일 전문 인력양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며, 
한국의 네일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한국네일협회는 날로 성장하는 네일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네일기술 자격증 관리 및 자격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나갈 독립기구를 설립하고, 협회의 활동과 자격관리를 이원화하여 관리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출범한 한국네일기술진흥원은 자격검정업무와 인증학원등록제도, 인증심사위원제도 등을 주 업무로 하여 
네일 산업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준제시를 통해 늘어날 네일 수요에 대비했다. 

이와 같이 한국네일산업은 세계적인 네일 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세계 최대규모 네일 시장인
미국의 네일 관련 종사자와 유통사업자들의 많은 수가 한국인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기술과 네일 미용재료와 용품의 기반이 그대로 한국 네일 시장에 적용돼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네일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함께 네일 업계와 관련 단체에서는 네일 미용 서비스가 사치스러운 미용 서비스가 아닌 대중적인 미용서비스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대국민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했으며, 지금까지도 네일아트가 아닌 네일 미용서비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과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네일피아가 주최한 세계 네일인들의 축제인 제1회 NAIL EXPO가 2005년 3월 27일 개최되면서, 해마다 세계 네일인들의 축제이자 
네일기술 경연장으로 발돋움하게 되어 한국 네일 산업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고 있다. 아울러 지방의 네일문화 확산을 위하여 제1회 BINAIL (Busan International Nair Fair)을 개최(2004.6.27)하여 올해로 8회(2014년)를 맞이하며 대한민국 네일문화는 전국에 걸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네일협회가 2013년 10월 5일 민간 네일기술자격시험 시행을 종료하기까지 130,000여명이 한국네일협회가 시행한 민간자격검증시험에 응시함으로써 네일산업을 이끌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었다. 또한, NAIL EXPO, BINAIL, SINAIL 행사와 함께 열리는 네일기술경기대회 마다
40여 종목의 다양한 콘테스트에 평균 1천여 명이 넘는 네일아티스트가 기술 경연에 참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취업과 창업을 통한 네일 전문
단독 숍과 숍인숍 등 5만 여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후 한국네일협회를 구심점으로 네일 산업의 활성화와 네일의 대중화를 위한 사회활동이 시작 되었다. 1997년 3월 27일 대통령령에 의해 공표된(법률 제5314호)민간자격제도를 바탕으로 1998년 4월19일에는 불광동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최초로 제1회 네일기술자격 2급 필기검정시험이
열렸으며, 291명이 응시함으로써 본격적인 네일 산업의 성장을 한국네일협회가 주도하게 된다.

이후 꾸준히 성장이 이어졌으며, 특히 IMF기간 전국적으로 재취업과 네일샵 창업 붐이 형성되면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네일서비스 교육 분야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는 네일 유통시장을 성장시키는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봉선화의 원산지는 인도·말레이시아 및 중국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퍽 오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문헌에 봉선화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강희안의 ‘화목구품’이다. ‘화목구품’ 에서는 봉선화를 9품에 넣고, “화암수록” 의 ‘화목구등품제’ 에서는 8등에 넣고 있다. 그리고 “산림경제” “임원십육지” 등에도 나온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는 “젊은 각시와 어린이들이 봉선화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이다”라고 나와 있다. 조선시대에는 귀천에 관계없이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이는 미용품속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손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미인의 조건으로 손은 ‘섬섬옥수’여야 하며, 다산 다남의 조건으로 ‘손은 마치 봄에 솟아난 죽순 같으며, 손바닥의 혈색이 붉어야 한다.’ 하여 어느 시대보다 손에 대한 속설도 많이 생겨났다. 중매쟁이들도 처녀의 손을 만지며 온기와 함께 수상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특히 손톱이 붉지 않은 처녀들은 봉선화 꽃과 잎사귀를 잘 간직했다가 일 년 내내 물들이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 네일 산업의 태동은 용산 미국기지 내에서 
한국에 상주하는 미국인을 위한 네일미용 서비스로 
1980년도 중반부터 시작 되었으며, 국내 최초의 네일 숍은
 이태원 세계로 상가에 1992년 개업한 "그리피스 네일" 이며, 
1994년부터 조옥희가 네일 연구소를 개설하고 
1994년 10월 동아문화센터에서 본격적인 네일 교육을
시작하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95년 8월 
압구정동에 최초로 네일 전문 아카데미가 개원하였다. 
1995년 키스 네일이 네일미용 재료상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네일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후 1996년부터 코삼, 락맨, 
모디쉬 뷰티아카데미, 헐리우드 네일, 쎄씨네일, 핑크네일, 팜코퍼레이션, 네일아트 넘버원, 크리스찬 네일 등의 네일 유통회사와 
네일 전문 아카데미 및 네일숍이 생기면서 네일업의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다. 

1995년부터는 문화센터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네일아트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면서 일반인들도 네일아트를 알기 시작하였고, 유통업체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백화점과 같은 거점을 위주로 네일 미용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네일에 대한 인식이 전국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1996년도 이후엔 네일에 대한 관심과 관련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네일숍과 유통업체가 하나둘씩 늘어나게 되었으며, 네일 유통 업체들과 국내에서 활동 중인 네일인, 네일숍 사업주들을 주축으로 한 모임이 결성되었고, 이후 1997년 10월 이를 발전시켜 한국네일협회가 발족되어
네일 산업 발전을 위한 본격적인 협회 활동을 전개되었다. 

지난 88서울 올림픽에서 100m달리기를 우승한 그리피스 조이너의 손톱을 기억할 것이다. 스타트지점에서 카메라에 비친 그녀의 손톱을 보고 대다수 국민들은 미국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그녀를 ‘독특한 취향을 가진 특이한 사람’ 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네일아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시간이 지나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이뤘다. 미국 네일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들의 네일숍 창업과 취업률이 높아지면서 한국인의 네일 산업 점유율 또한 함께 상승했고, 네일 유통 업체들도 큰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이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미국사회에서 크게 성공한 네일 관련 한국인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가 하면, 성장세를
기반으로 국내 개발 및 생산된 네일 관련 상품들 또한 무수히 수출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 뷰티산업의 꽃으로 주목 - 국가제도 장치마련



또한 2014년 4월 10일에 고용노동부는 미용사(네일)국가기술자격시험 시행을 위한 국가기술자격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공표하였으며, 
이에 근거하여 한국 산업인력공단은 2014년 9월 2일 미용사(네일)국가기술자격시험 출제기준을 발표하였고, 2014년 11월 16일 첫 시험이
실시되었다. 

한국 네일 산업은 25년 전 이태원 부근에서 한국에 상주하는 미국인을 위한 네일 미용 서비스를 시작으로 8,000천억 원대의 시장을 형성하면서 급성장해 왔다. 이미 우리 사회는 네일 산업의 발전으로 수많은 일자리 창출과 세수확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이는 나아가 국가산업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전국의 미용관련대학에서는 네일 전공학과가 개설되어 면학하는 대학생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160여개의 뷰티관련대학(교) 대다수가 네일 전공 학부 및 네일을 부전공 및 교양과목으로 채택해 학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21세기 뷰티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네일 산업은 그 성장 가능성과 전망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관련기관이나 기업 그리고 네일 분야 종사자들 모두가 네일 산업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나아가 국민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실현 시킬 수 있도록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소자본 창업으로 확산- 대중화 계기 마련

근자에 들어서는 대학에서 네일아트를 정규학과로 개설해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전국 뷰티종합학원 및 미용학원과 네일전문학원이 네일전문 교육을 실시하면서 네일의 대중화와 전문화, 세분화가 이뤄져 미의 완성단계로서 네일아트를 보는 시각이 뿌리 내리고 있다. 

이제는 네일이 단순한 미용서비스의 개념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며, 아름다운 삶에 대한 고객의 욕구 충족에 따른 생활서비스의 개념으로 인식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도·소매를 겸하는 대형창고형 네일 매장과 온라인유통회가 성업을 하면서 네일아트에 관한 관심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 97년에는 서초동에 도매 중심의 창고형 매장인 락맨코리아가 설립되었으며, 99년에는 국내 최초로 네일전문 종합 유통매장으로 개업한(논현동 소재)네일클럽이 생기며, 네일전문 도·소매 매장 창업과 전국적인 영업점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국내에서 네일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네일아트관련 화장품들은 대부분 수입품 위주로 유통시장이 형성되어 왔지만 2008년부터는 국내 최초 네일전문 종합 화장품인 GIONYX가 런칭되며 이후 BANDI 등 국내 브랜드의 네일아트 전문 화장품들이 잇따라 런칭되면서 국내 네일아트 화장품 유통시장도 활성화가 시작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네일 전문 업체들이 화장품 전문점이나 피부 관리실, 미용실 등으로부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하며 네일 부문에 대한 R&D투자까지 확대하고 있다. 특히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네일숍'이 인기를 끌고 있어 이에 대한 시장 확대가 업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내에 위치한 네일숍의 경우는 고정 고객 확보가 용이하며 단독매장으로 입점돼 있기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로드 숍보다 안정적으로 영업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네일 시장이 점차 대중화되고 확대됨에 따라 매스시장을 대상으로 한 할인점도 주부고객들을 상대로 
네일 카운터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패션, 메이크업 등 기타 미용분야에서 네일과 연계한
 고객 서비스 개념 도입과 고정고객 확보 차원으로 네일미용에 대한 접근과 인식이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네일산업은 21세기형 비즈니스가 벤처 기업형 창업, 소규모 창업, 패밀리 비즈니스형 
창업이 주된 창업 형태가 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에 합당한 비즈니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 네일 기술 정규교육 이수자 15만 명... 네일숍 1만여 업소 성업



한국네일협회가 다양한 네일문화 활동을 전개하면서 점차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나가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국내 최초의 네일아트 전문지로 월간 NAILPIA를 창간(2001.10)한다. 한국네일협회는 책 발행을 통해 국민들에게 본격적으로 네일아트를 알리는 문화 마케팅을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3년 4월 1일을 네일 데이로 선포하며, 네일 문화의 저변확대와 네일인의 위상확립을 위한 날로 정한다. 이후 한국네일협회는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매년 4월 1일이면 전 국민이 향유하는 네일문화 행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했다. 






◎ 1992년 이태원 그리피스 네일- 네일 산업 출발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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